3장
압력
욕조에 물을 받아 놓고 물속에서 손바닥으로 물을 한 번 밀어 보자. 손 앞의 물은 쌓이지 않는다. 옆으로 비켜서 손 뒤로 돌아 들어가고, 손에서 한 뼘 떨어진 물까지 함께 움직인다. 2장의 가짜 유체였다면 손 앞에 물이 몰려 쌓였을 것이다. 진짜 물에서 그 일을 막는 것이 압력이다. 물이 몰리려는 곳에서는 압력이 높아져 물을 밀어내고, 물이 흩어지려는 곳에서는 압력이 낮아져 물을 끌어들인다. 이 장은 압력이 발산을 어떻게 지우는지 보고, 그 결과로 무엇이 따라오는지 본다. 방정식 막대에서 강조된 항이 압력이다.
압력이 발산을 지운다
2장 끝의 엔진을 떠올려 보자. 엔진은 스텝마다 먼저 힘을 더하고 흐름을 실어 나른다. 그렇게 얻은 임시 속도장 는 대개 발산이 0이 아니다. 압력 투영은 여기에 압력이 미는 몫을 더해 발산을 지운다. 아래 실험은 그 투영 한 번을 천천히 보여 준다. 투영을 끈 채 물을 오른쪽으로 한 번 민 직후의 속도가 임시 속도다. 발산 층에서 물이 모이는 앞쪽은 하늘색(발산이 음수), 물이 흩어지는 뒤쪽은 주황색(발산이 양수)이다.
곁주석
이 실험은 엔진의 투영 단계 하나만 돌린다. 다른 항은 모두 꺼서 반복과 반복 사이에 물이 움직이지 않는다. 격자는 기기와 상관없이 240×135다. 엔진은 보통 멀티그리드로 압력을 풀고, 이 실험의 Jacobi 반복은 그 과정을 보이려고 둔 표시 모드다. WebGPU가 없는 브라우저에서는 녹화한 영상이 나오고, 영상에서는 반복 횟수와 풀이를 바꿀 수 없다.
이 실험의 반복은 Jacobi 반복이다. 한 번 돌 때마다 모든 칸의 압력을 한꺼번에 고친다. 각 칸은 이웃 네 칸의 압력과 자기 칸의 발산만 보고, 그 발산을 지울 만큼 압력을 정한다. 그런데 한 칸의 압력이 바뀌면 이웃과의 압력 차가 바뀌어 이웃 칸으로 물이 드나든다. 그래서 남은 발산은 이웃으로 번지면서 옅어지고, 부호가 다른 발산이 만나면 서로 지워진다. 오른쪽 위 그래프는 밀린 물의 앞쪽 한 점에서 발산과 압력을 잰다. 반복할수록 발산은 0으로 다가가고 압력은 쌓인다. 압력 층으로 바꾸면 물이 모이던 앞쪽은 압력이 높고(주황) 흩어지던 뒤쪽은 낮다(하늘색). ‘반복’을 한 칸씩 옮기면 한 번씩 볼 수 있다.
이 반복은 느리다. 소식이 한 번에 이웃 칸까지만 가고, 가는 동안 옅어지기 때문이다. 300번을 돌려도 무대에서 가장 큰 발산은 처음의 3분의 1쯤 남고, 2000번을 돌려도 25분의 1쯤 남는다. ‘풀이’를 멀티그리드로 바꾸면 엔진이 보통 쓰는 방법으로 같은 투영을 푼다. 이때 ‘반복’은 쓰이지 않는다. 멀티그리드는 격자를 반으로, 다시 반으로 거칠게 만든 사본에서도 반복을 돌려 먼 곳까지 소식을 한꺼번에 보낸다. 한 스텝(V-사이클 두 번)이면 남는 발산이 처음의 150분의 1보다 작다. 이때 압력은 밀린 물 둘레에만 머물지 않고 탱크의 양쪽 벽까지 퍼진다. 오른쪽 절반은 높고 왼쪽 절반은 낮다. 물이 꽉 찬 닫힌 탱크에서는 물 전체가 한쪽으로 쏠릴 수 없어서, 밀린 물 위아래로 그만큼의 물이 거꾸로 돌아 흘러야 하기 때문이다. Jacobi 반복으로는 탱크 전체의 압력이 자리를 잡기까지 수만 번이 걸린다.
곁주석
압력을 유한한 번만 풀면 발산이 조금 남는다. 엔진의 보통 스텝도 그렇다(2장의 곁주석). 이 실험에서 남는 가장 큰 는 밀기 직후 0.026, Jacobi 300번 뒤 0.0084, 2000번 뒤 0.0010, 멀티그리드 한 스텝 뒤 0.00016이다(는 칸의 크기). 이 수는 작성자의 컴퓨터에서 잰 값이고, 다른 그래픽 장치에서는 끝자리가 조금 다를 수 있다.
투영을 식으로 적어 보자. 투영은 임시 속도에서 압력의 기울기를 빼는 일이다. 는 한 스텝의 시간, 는 일정한 밀도다.
새 속도는 발산이 0이어야 한다. 양변의 발산을 잡으면 압력이 따라야 할 식이 나온다.
부호를 읽어 보자. 물이 모이는 곳에서는 이라서 도 음수다. 압력이 이웃보다 높은 봉우리라는 뜻이다. 압력이 물을 미는 힘은 기울기의 반대쪽, 곧 압력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향한다. 그래서 봉우리는 물을 밖으로 밀어낸다. 물이 흩어지는 곳에서는 거꾸로 압력이 골짜기가 되어 둘레의 물을 끌어들인다. 운동 방정식에서 이 힘이 압력 항이다.
실험의 Jacobi 반복은 위의 압력 식을 칸마다 푼다. 가로세로가 인 칸 의 새 압력은 이웃 네 칸의 지난 압력으로 정한다. 벽에 닿은 칸은 벽 쪽 이웃을 빼고, 4 대신 남은 이웃의 수로 나눈다(벽 한 면 옆이면 3으로, 모서리면 2로).
곁주석
이 교재의 모형에서 압력은 모든 곳에서 한꺼번에 맞춰진다. 밀도가 일정하다고 두었기 때문이다. 이 가정은 소리가 무한히 빠르다는 가정과 같다. 실제 물에서는 압력의 변화가 소리의 빠르기, 초속 1500m쯤으로 퍼진다. 매우 빠르지만 무한하지는 않다. 수도꼭지를 갑자기 잠글 때 관이 쿵 하고 울리는 수격 현상은 이 유한한 빠르기 때문에 생긴다.
압력 차가 흐름을 출발시킨다
발산을 지우는 일은 곧 압력의 차이가 물을 미는 일이다. 이 힘은 멈춰 있던 물도 출발시킨다. 아래 실험은 양 끝이 이어진 관이다. 오른쪽 끝으로 나간 물은 왼쪽 끝으로 들어온다. 고리 모양의 관을 펼쳐 놓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처음에 물은 멈춰 있다. 관 한 곳의 띠에 펌프가 있고, 펌프는 띠 안의 물만 민다.
곁주석
펌프는 0장에서 물을 저을 때와 같은 종류의 힘(외력 )을 띠의 높이 전체에 고르게, 스텝마다 준다. 관의 위아래 벽은 미끄러운 벽이고 점성은 넣지 않았다. 입자는 기기와 상관없이 16 384개다.
펌프가 돌기 시작하는 순간 관 전체의 물이 함께 움직인다. 펌프에서 먼 물도 같은 순간에 출발한다. 띠 바로 앞은 압력이 높고(주황) 바로 뒤는 낮다(하늘색). 띠 앞에서 관을 따라 한 바퀴 돌아 띠 뒤에 이르는 동안 압력은 고르게 내려간다. 이 압력 차가 띠 밖의 물을 민다. 띠 안에서는 압력이 오히려 물을 뒤로 밀어서, 펌프의 밀기를 관 전체가 나눠 가진다. 그래서 물은 관 어디서나 같은 빠르기로 빨라진다. 오른쪽 위 그래프는 펌프에서 먼 점의 속력 와 띠 바로 앞의 압력 다. 관 속의 물은 어디서나 같은 속력이므로, 띠 밖에서 운동 방정식은 압력이 관을 따라 내려가는 만큼 물이 빨라진다는 식이 된다.
펌프를 끄면 압력 차가 사라진다. 그래도 물은 그대로 흐른다. 이 관에는 마찰(점성)이 없어서 물을 늦추는 것이 없다. 압력 차가 정하는 것은 물의 속력이 아니라 속력이 바뀌는 빠르기, 곧 가속도다. 펌프가 거꾸로 밀면 압력도 뒤집혀 띠 뒤가 높고 앞이 낮아진다. 흐르던 물은 관 어디서나 함께 느려지고, 앞으로 민 것과 같은 세기로 같은 시간 거꾸로 밀면 멈춘다.
베르누이: 압력이 하는 일의 결산
2장의 좁아지는 관으로 돌아가자. 물은 목에서 빨라졌다. 빨라지려면 미는 힘이 있어야 하고, 이제 그 힘이 무엇인지 안다. 압력의 차이다. 넓은 곳의 압력이 목보다 높아서, 목으로 들어서는 물을 앞으로 민다. 목을 지나 넓어지는 곳에서는 거꾸로 압력이 다시 높아져 물을 늦춘다.
이 결산을 식으로 적을 수 있다. 흐름이 시간에 따라 바뀌지 않고(정상), 점성이 없고, 밀도가 일정하다고 하자. 한 유선을 따라 가는 물 덩어리가 압력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가는 동안, 압력 차가 덩어리에 일을 하고 그 일만큼 운동 에너지가 는다. 부피당으로 적으면 다음과 같다.
곧 한 유선 위에서는 다음 값이 어디서나 같다. 는 유선마다 정해지는 상수다.
이것이 베르누이 식이다. 새로운 법칙이 아니라, 압력이 물을 미는 방식(운동 방정식)을 위의 조건에서 한 유선을 따라 적분한 결과다. 아래 실험은 2장의 관에 압력계 다섯 개를 달았다. 압력계마다 그 단면의 평균 속력 로 이 식을 써서 압력을 읽는다. 하늘색 기둥이 , 그 위의 테두리가 이고, 두 몫을 더하면 모든 압력계가 같은 점선에 닿는다.
곁주석
이 관은 2장처럼 정해 둔 식으로 그린 흐름이라 운동 방정식을 풀지 않았고, 그래서 2차원 압력장이 없다. 압력계는 단면마다 평균 속력 하나를 쓴 1차원 베르누이 식으로 압력을 읽는다. 이 관에서는 단면의 평균 속력이 가운데 유선의 속력과 같으니, 가운데 유선을 따라 쓴 베르누이 식이다. 압력은 차이만 의미가 있다. 기둥이 서는 높이는 을 0.11로 정해 둔 값이다. 그래서 모든 압력계가 같은 점선에 닿는 것은 식을 쓴 결과이지 이 실험이 따로 확인한 것이 아니다. 목의 기둥이 바닥에 가까워도 진공이 아니다. 아래의 수는 이 모형의 무차원 값이다.
목에서 기둥이 가장 낮고, 목을 지나면 처음 높이로 돌아온다. ‘좁아짐’이 2일 때 목의 압력은 맨 왼쪽 압력계(2장의 단면 1)보다 0.033 낮다. 좁아짐을 3으로 하면 목의 속력이 0.30에서 0.45로 1.5배가 되고, 압력 차는 0.089로 2.7배가 된다. 압력 차는 속력의 제곱의 차 이라서 속력보다 빨리 자란다. 목의 만 보면 속력이 1.5배일 때 배이고, 맨 왼쪽 압력계의 몫을 빼면 그 차가 더 가파르게 늘어 2.7배가 된다. 관이 곧으면 속력이 어디서나 같고, 기둥도 모두 같은 높이다.
베르누이 식은 흔히 ‘빠르면 압력이 낮다’로만 기억된다. 그러나 이 식은 네 조건(정상, 비점성, 비압축, 같은 유선)이 맞을 때의 결과이고, 조건이 깨지면 성립하지 않는다. 이 장의 실험에 이미 그런 예가 있다. 펌프가 도는 동안의 관을 보자. 물은 관 어디서나 같은 빠르기로 흐르는데 압력은 관을 따라 내려간다. 속력이 같은데 압력이 다르니, 관을 따라 이 같지 않다. 흐름이 정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이 빨라지는 중이고, 압력 차는 그 가속에 쓰인다. 펌프를 끄고 물이 일정하게 흐르면 압력도 관 어디서나 같아져 베르누이 식과 맞는다. 다른 예는 4장에서 본다. 폭이 일정한 긴 관에 물을 일정하게 흘려도, 실제 물은 관을 따라 압력이 내려간다. 속력은 어디서나 같으니 베르누이 식대로라면 압력도 같아야 하지만, 점성이 벽에서 물을 붙잡으니, 물을 흘려보내려면 늘 그만큼의 압력 차가 필요하다. 실제 벤투리관에서 목을 지난 뒤 압력이 처음만큼 돌아오지 않는 것도 점성으로 잃는 몫 때문이다.
한 문장으로
압력은 밀도가 일정한 물이 몰리거나 비지 않도록 어디서나 한꺼번에 맞춰지면서 물을 압력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미는 힘 이고, 베르누이 식은 그 결과가 정상·비점성 흐름의 한 유선 위에서 띠는 특수한 꼴이다.
생각해 볼 질문
2장의 협곡 문제로 돌아가자. 넓은 강이 협곡에 들어서며 초속 1m에서 2m로 빨라진다. 이 물이 빨라지도록 미는 것은 무엇이고, 협곡 안의 압력은 넓은 강보다 높을까, 낮을까?
답 보기
압력의 차이가 민다. 협곡 안의 압력이 넓은 강보다 낮아서, 그 차이가 물을 협곡 쪽으로 민다. 강에서는 이 압력 차가 수면의 높이로 드러난다. 물이 협곡으로 들어서며 수면이 조금 낮아진다. 마찰을 무시하면 베르누이 식으로 그 높이를 어림할 수 있다. 높이가 바뀌는 흐름이라 식에는 위치 에너지의 몫이 더해진다. 빨라진 물 1kg이 얻는 운동 에너지 J만큼 위치 에너지를 내놓아야 하니, 수면은 15cm쯤 낮아진다.
생각해 볼 질문
물이 가득 찬 긴 수평 관의 한쪽 끝에서 피스톤을 갑자기 밀기 시작했다. 반대쪽 끝은 열려 있다. 그 끝의 물은 언제 움직이기 시작할까? 이 교재의 모형과 실제 물로 나눠 답해 보자.
답 보기
이 교재의 모형에서는 같은 순간이다. 밀도가 일정하면 압력이 어디서나 한꺼번에 맞춰지기 때문이다. 실제 물에서는 압력의 변화가 소리의 빠르기, 초속 1500m쯤으로 퍼진다. 관의 길이가 15m라면 반대쪽 끝의 물은 100분의 1초쯤 뒤에 움직이기 시작한다. 사람에게는 같은 순간이나 다름없다.